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을 구하라

David Wilkerson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실 때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한복음 16:23).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놀랄 만한 선언이었습니다. 이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들을 떠나 잠시 동안 보지 못하실 것이라고 예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 하늘의 모든 축복들을 허락하셨음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들이 해야 했던 것은 단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 주석자들은 이 약속이 그 이전까지는 제자들에게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이 이 땅을 떠나 아버지 곁에 가시기 전까지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가장 분명한 예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 있는 사역을 했던 한 무명의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그들의 일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지시키려 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보고하였습니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마가복음 9:38).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9:39-40).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우리 편에 서서 나와 함께 있는 자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으나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행위로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모든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사람은 12 명의 제자들처럼 주님과 더불어 개인적인 친교를 누리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제자들이 받았던 위대한 계시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언덕이나 강가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군중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붙잡고 그들에게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또한 기도와 금식의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금식 외에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이 무명의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와 매우 대조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께 기도로 두드리고, 찾고 구하는 법을 개인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축복들, 즉 모든 은혜와 능력과 강건함이 그리스도안에 있음을 직접적으로 배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2-14).

여기에 즉각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약속을 구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믿음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는 주님이 자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기적을 행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요한과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그분은 이렇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지금 구하라. 다른 때를 기다리지 말라. 그리고 신학적으로 그것을 해석 하려하지 말라. 나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너희에게 말하고 있노라. 너희가 내 안에 있으므로 인해 그 능력을 소유하였다. 구하라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행하실 것이다.”

대다수의 성도들이 전혀 구하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가진 모든 능력과 자원들을 생각하십시오.

제자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저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요한복음 16:24).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저에게 속삭이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데이빗 너는 내가 너에게 허락한 능력을 요청하지 않았어. 단지 나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돼.”

우리의 주님은 그의 약속에 대한 불신이 점점 자라고 있음으로 인해, 그의 응답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음으로 인해,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능력에 대한 요구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으로 인해 슬퍼하십니다. 이것은 육체의 모든 죄들을 합친 것 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은 지금보다 더 절박한 시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간구는 적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인들은 주님께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신앙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에 대한 고백입니다. 제자들처럼, 나는 기도와 금식도 하고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푹 젖어서 기도 가운데 그분의 품안에 있기를 사모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놀라우신 주님 안에서의 믿음을 낳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능력에 대해 감탄한다. 하지만 나의 반응은 무엇인가? 나는 주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나에게 그의 이름의 모든 능력을 선포할 열망과 영적인 권위를 위임하고 있는가?

놀라운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어떻게 의뢰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송축합니다. 우리는 “능력, 능력, 주의 복된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이라며 노래합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찬미하며, 그의 이름이 불리어짐을 사모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선포하거나 그 이름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손을 환자에게 얹고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치료의 능력을 선포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들은 우리의 자녀들과 가족들과 친구들의 영적 각성을 위해 그의 이름으로 중보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사탄을 대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우리의 가정과 결혼을 파괴하도록 허락하신 적이 있을까요?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사탄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크게 분을 내어 사람들에게 내려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계시록 12:12). 이 분노한 마귀가 소극적이고 결핍된 교회와 만나게 될지 의문입니다. 이 마귀가 그리스도의 이름은 찬양하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원수를 대적하지 않는 믿음 없는 사람들을 찾을까요? 이 마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어. 주님이 다시 오시면 그때 가서 승리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며 쉽게 굴복하는 하나님의 사람과 마주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주는 것을 결코 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결코 그의 공격에 굴복해서도, 그를 두려워 해서도, 혹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최근 저의 마음에는 사탄과 사탄의 능력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은 저의 영혼을 일깨우고 선포하도록 불 붙였습니다. “사탄아 이제 충분하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으로 너를 대적한다. 경고한다. 나는 너의 모든 공격에 대응할 것이므로, 너는 지옥에 있는 너의 무리들을 소집해 보라.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도망하리라.”

사탄은 저의 삶에 고통의 홍수를 몰고 와서는, 저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악의 홍수가 밀려올 때 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행사될 것입니다. 원수는 계속해서 마귀를 보내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마귀들은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견고한 벽에 부딪힐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제한한 모든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3장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절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러 성전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일상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그들은 성전문에 앉아 구걸하는 한 사람을 지나쳤습니다. 그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걸인을 본 그 순간, 거룩한 분노가 그들 안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 사람의 삶 가운데서 도전 받아보지 않았던 사탄을 보았습니다. 이제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을 사용할 때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사도행전 3:4,6).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금과 은보다도 더 값진 것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지구상의 모든 의사들이나 명약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에 관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너에게 주노라”

그리고 나서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3:6-8).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들은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설명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16). 베드로가 한 말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당신들이 여러 해 동안 본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장애인이었소. 그리고 당신들은 이제 그가 어떻게 해서 뛰고 춤출 수 있게 되었는지 알기 원하였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함이오. 이 사람이 치료 받은 것은 다른 어떤 이름도 아닌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오”

베드로가 그 사람의 새로운 상태를 설명할 때 사용한 “완전히 나음”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당하는 시련의 어려움이나 해결 가능성의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러한 상태로부터의 “완전한 치유”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공급되는 이 완전한 치유는 원수로부터 오는 모든 공격을 격퇴시킬 것입니다.

그 일어난 일을 들은 성전 관리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그 다음날 사도들을 시험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그들을 심문하였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4:7). 베드로가 다시 선포하였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4:10).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담대하고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제한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한 본질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의 거룩하고 유일하신 분을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한 장애인의 삶을 향해 놀라운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진실로 주님의 이 말씀을 믿지 않았더라면 결코 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한복음 16:23). 이 사도들은 예수님이 “무엇이든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한 없는 약속을 하셨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의 예를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역시 모든 일들이 가능함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께 우리가 한정 지운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을 구하는 것은 복잡하게 숨겨진 신학적 이론이 아닙니다.

저의 서재에는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을 주제로 다룬 책들이 있습니다. 저자들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 속에 감추어진 깊은 의미를 이해 시키기 위해 이 책들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책들은 너무 난해한 나머지 독자들의 머리는 곧 어지럽게 되고 맙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에 대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진리는 너무나 단순해서 어린 아이조차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단순함이란 이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요청하였을 때, 그것은 마치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께 요청하는 것과 같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제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사랑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과 대화하셨으며, 지상에 계시는 동안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요청한 모든 것들을 듣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이렇게 증언하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의 말을 들어주신다.” 잠시도 아버지는 그의 아들의 요청을 거절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그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과 친밀하신 것처럼 우리를 맞아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와 하나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요한복음 17:21,23).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이제 아버지와 하나이고 그 아들과 하나인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갖는 상속권과 더불어 입양되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의 모든 권세와 부가 우리에게 부여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와 함께 그의 유업을 나누는 상속자가 되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요청을 아버지께서 들으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 응답하시듯이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받아온 놀라운 권세는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이 권세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나 정확히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주님께 두었을 때 그는 그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와 함께 있으며, 그와 하나가 되었다” 그 때부터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취하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주님은 자신의 손바닥에 우리의 이름을 쓰시고, 하늘에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 아래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구절이 단지 비인격적인 상투 어구가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정확한 위치를 나타냅니다. 아버지께서 그 위치를 인정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16:26-27).

주님은 왜 우리에게 그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을 지시하셨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의 이름으로 구할 때 마다 너희의 요청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과 동일한 능력과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구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주님이 병자에게 손을 얹으신 것처럼 여기시고 치료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당신께 나아가 열매를 맺기 위해 그리스도안에서 택함을 받은 제가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아버지께 큰 요청을 하기를 원합니다. 이로 인해 저의 기쁨은 넘칠 것 입니다.”

저는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했지만 내 기도가 응답 받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나는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요청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요”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훼손하는 어떠한 죄를 우리의 삶 속에 허용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축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입니다. 우리의 죄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할 것입니다.

혹은 그 장애물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미온적 태도나 온전히 열리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의심으로 인해 우리가 눌려있을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가 경고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서 1:6-7).

최근 저는 죄에 깊이 빠져있는 10대의 딸을 둔 한 과부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딸은 한때 좋은 믿음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약물에 빠져있고 남자 친구와 동거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소녀의 아버지는 암을 앓았으며, 그녀는 “하나님 저의 아빠가 죽지 않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후, 그 소녀는 주님으로부터 급속히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회를 주었어요. 주님의 이름으로 믿음을 갖고 기도했어요. 하지만 아빠는 죽고 말았어요.”

한번은 비행기 안에서 울고 있는 한 여인의 옆 자리에 제가 앉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제가 목사라고 소개하고는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막 장사 지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너무나 좋은 분이셨어요. 저는 하나님께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어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의 아버지와 같은 분을 죽게 하실 수 있나요? 말해보세요. 저는 이제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희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담긴 수많은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저희는 이로 인한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그는 결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기도가 역사한다고 이제 저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저의 기도가 응답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가 하나님께 저의 삶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한 사랑하는 사람의 치유나 개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진지한 믿음으로 기도했던 과거의 어떤 상황을 회상하실 수 있지 모릅니다. 하지만 응답 받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어. 만약 나의 탄원을 들으셨더라면 몰랐겠지만, 그는 내가 요청했던 것을 응답하지 않았어”

비록 하나님께 원망은 하지 않았을지라도 확신은 잃어버렸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하지 못하도록 무엇인가 여러분을 붙잡고는 기도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 결국 더 이상 그분의 넘치는 은혜를 향유하지 못하게 됩니다.

야고보는 이를 분명히 했습니다. “흔들리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야고보가 사용한 “흔들리다”의 의미는 결정을 내리지 못함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요청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만약 당신이 저에게 응답하시면, 제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만약 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면 당신에게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저는 저의 방법대로 삶을 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며, 우리가 그의 아들에게 전적으로 위탁하기를 결정하지 않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내어 드린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안에 있는 능력을 보류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는 두 가지 커다란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첫번째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2-14). 주님은 마지막 절에서 이것을 더욱 단순하고 명료하게 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두 절 뒤에 예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6-18).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리니 그의 능력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이것들은 주님의 놀라운 두 가지 약속입니다. 두 절 사이에 있는 또 다른 한 절을 주목하십시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4:15). 왜 이 말씀이 이곳에 나타났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약속들에는 한가지 조건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이 두 가지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때 지켜집니다. 이 약속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능력을 요청할 때 아무것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도록 성취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해가 지날수록 많은 성도들은 조금씩 안주 되어 갑니다. 결국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의 구속에 안주하고 맙니다. 그들은 언젠가 하늘에서 주어질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다 이르렀습니까? 여러분은 그의 능력과 은혜에 의한 구원 이외에 이상 더 바라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또 다른 날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힘만을 주시고 마셨습니까? 사탄의 공격을 받았던 대부분의 삶 속에서 그는 여러분에게 일시적인 평안과 기쁨만을 주고 마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이 모든 구절들은 내 안에 있는 “나의” 예수님이 나의 요청보다 결코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많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불신에 의해 그리스도를 하찮고 무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나의 그리스도께서 제한 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모든 지옥의 마귀들이 나의 큰 요청에 의해 나의 하나님이 얼마나 큰 분인지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더 크신 나의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원합니다. 저는 그가 저의 예전의 삶 속에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신 하나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세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든 문제와 고통, 모든 소망 없는 상황, 생존을 위해 허덕이며 고통 받는 모든 과부와 고아와 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 모든 비통한 것들을 저울 위에 올려 놓고 저울이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 믿음은 그리스도를 저울의 다른 편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그가 이 세상의 모든 죄와 고통들을 어떻게 제압하는지를 기쁘게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마귀가 우리의 마음과 가정에 들이 닥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크고 분명하게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제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 선포할 때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음이나 사람이나 마귀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움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세상이 나의 요청의 위대성을 통해 나의 그리스도의 비견할 수 없는 위대하심을 보게 되기 원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크게 구하라고 말씀하셨기에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에게 어려운 요청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여러분에게 주신 이 약속들을 믿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이것들은 여러분의 영적전쟁에서의 강력한 무기들입니다. 이 약속들을 붙잡고 요청할 때 이것들은 여러분의 손에서 강력하게 역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