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폭풍을 대비하고 있습니까?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 언젠가 일어나셔서 전세계를 흔드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 예언은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뒤집어 엎으시고 그 거민을 흩으시리니...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암흑하여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으며...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듬 같고 포도주를 거둔 후에 그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이사야 24:1, 11, 13).

하나님은 지구를 흔드실 것입니다. 마치 지구가 올리브 나무인양 그 열매가 다 떨어질 때까지. "...두려운 소리를 인하여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 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하므로 떨어지고 다시 일지못하리라..."(이사야 24:18-20).

하나님께서 지구를 흔들기 시작하실 때 전 세계는 작은 오두막 같을 것입니다. 다른 예언들이 이사야의 말과 일치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분노가 일어나면 하나님께서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흔드실 것이라 말했습니다.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의 칼이 그 형제를 칠 것이며 내가 또 온역과 피로 그를 국문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떼와 그 함께한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하리라.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인줄 알리라"(에스겔 38:20-23).

요엘은 이야기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램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요엘 3:16).

학개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6-7).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하기를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 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히브리서 12:26-27).

하나님은 보이는 모든 것을 흔드시려 합니다. 그리하여 그분만이 흔들리지 않는 유일한 힘으로 드러나실 것입니다.

주님은 1980년대 말 문자그대로 지구를 지진으로 흔들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의 지진은 거의 아르메니아 전 지역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일본에서의 진도 6.9 지진은 거의 전 도시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샌프란시스코에 무시무시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거의 매일 다른 지진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계속해서 미국 서부해안을, 북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남으로 샌디에고와 멕시코까지, 쳤습니다. 바야흐로 뉴욕 신문은 머릿기사에서 "하나님께서 지구를 뒤흔드시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지요.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자고있으나 일어나야만 할 때 어떻게 할까요? 부모는 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 흔들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즉시 깨지 않으면 흔드는 정도는 좀 더 강해지고 진지해 집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신이 아이를 깨우지 않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하시는 일입니다. 미국과 세계 양쪽 모두에게. 처음에 그는 매우 부드럽게 우리를 흔드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흔듦은 보다 격렬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아직 우리를 깨우는데 성공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언급했던 예언들은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내가 세상을 한번 더 흔들겠다"고 말씀하실 때 그는 정말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우리의 경제, 교육제도, 정부를 흔드시고 우리가 신뢰하고 믿고있는 모든 것, 안전하고 평온해 보이는 모든 것을 흔드십니다.

당신은 국가부도를 가지고 장난을 하며 국제적인 채무지불을 위협하는 두 당파의 정치싸움 때문에 사라진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미국의 대통령에 관해, 어느 대통령인지는 모르지만, 매우 생생하고 반복되는 꿈을 꾸어오고 있습니다. 그 꿈에서 그는 대통령 집무실의 창밖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불신속에 머리를 저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뭐가 잘못됐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엄있는 각료들이나 자문위원들 중 아무도 미국의 붕괴를 그에게 설명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흔드실 방법입니다. 아무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8년 전 증시추락을 생각해 봅니다. 하룻밤 새 주가가 500 포인트나 떨어졌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실, 갑자기 지진이, 땅의 지진이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경제적 지진이 일어날 때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경고해 줍니다. 하나님의 진동과 더불어 동시에 커다란 사단의 홍수가 인류에게 내려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단은 곧 우리의 마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음란과 사악과 시험을 인류에게 격렬하게 쏟아 부을 것입니다. 사단은 그의 시대가 짧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는 거대한 악의 바람과 파도를 풀어놓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현재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보 고속도로를 통하는것 보다 사단이 악마적 홍수로 가정을 침범할 더 좋은 길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정보 고속도로는 지옥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포르노그라피의 공급창고 입니다. 나는 이 위대한 정보개발이 많은 훌륭한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강력한 도구가 될 잠재력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왕국과 능력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현금없는 사회의 출처가 될 수 도 있습니다. 이미 Chase Manhattan 은행은 뉴욕에서 서류가 전혀 필요없고 숫자만 누르면 되는 컴퓨터 뱅킹을 제도화 시켰습니다.

나는 악의 물결이 지금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아슬아슬한 지경이란 모든 것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것은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우리를 귀찮게 했던 것들이 지금은 평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전혀 거리낌을 주지 않는 수많은 악을 보고 듣고 있습니다.

나는 궁금합니다. 언제 그 폭풍이 닥칠지, 언제 모든 것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지, 얼마나 많은 크리스챤들이 참아낼 수 있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를 견뎌내는데 필요한 믿음의 기초를 갖게 될 지.

나는 그것이 이 순간 자기 백성을 향한 주님의 위대한 관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목자로서의 나의 지대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주님, 얼마나 많은 당신의 백성이 분노로 가득한 폭풍이 닥칠 때 쓰러질까요?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굳건히 견뎌낼까요? 그리고 어떻게 나는 그 거대한 진동을 견뎌내도록 그들은 준비시킬 수 있을까요?"

내가 기도하는 동안 주님은 내게 마태복음 7장에 있는 예수님의 집짓는 자의 우화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나는 이 우화가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를 향한 엄청난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찾는자 만이 그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 7:24-27).

예수님은 오는 폭풍우 가운데 지탱해 줄 유일한 것은 반석을 기초로 해야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사람은 그의 집을 반석 위에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반석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25절).

이 집을 지은 자들은 오늘날 마지막 시대의 두 부류의 크리스챤을 상징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그들은 두 개의 다른 종류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폭풍우가 왔을 때 이미 그 두 종류의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쓰러지지 않을 믿음의 지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그들은 지옥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사단의 맹공을 다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폭풍이 아무리 격양되어도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이 우화를 통해 우리가 알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자는 다가올 모든 것으로부터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다른 부류의 크리스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몰락은 클 것이다"(27절)라고 하신 사람들. 이것은 모든 것의 완전한, 완벽한 그리고 지독한 몰락 입니다.

이 시점에서 당신은 아마도 궁금할 것입니다. "정확하게 '집을 짓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수님이 여기에서 무엇을 언급하고 계신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각자가 짓고 있는 집은 엄청난 물결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집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걷는 발걸음, 동행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게되고 그의 길을 이해하는 기초를 쌓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핍박하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결정할 어떤 성품들을 우리의 믿음에 쌓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반석 위에 집을 지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예수님과의 관계가 그 폭풍을 견뎌내지 못할 때 큰 충격과 놀라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 주초가 없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우화가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우화는 순종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순종하고 그의 명령을 따라 행동하는 자. 주님은 생활방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대한 완벽하고 전적인 순종의 행위. 그것이 우리의 주초가 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우화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반석의 의미 전체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반석으로 집을 지어왔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은 적절하게 집을 짓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반석은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기원하는 기초적 동기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순종의 흐름이 있습니다. 마음의 동기에서 솟아난 흐름. 우리의 순종이 솟아난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근원이 순수하지 않으면 근원에서부터 솟아나는 모든 것이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울게 만드는 종류의 순종도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에 마지 못해 순종할 때입니다! 그것은 율법적인 순종입니다. 결과를 두려워한데서 기인한 차갑고, 기술적인 형식에 구애됨입니다.

십대의 딸을 바르게 할 필요가 있는 아버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딸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네 남자친구의 눈을 보니 마약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더구나! 나는 네가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네가 더 이상 새벽 1시나 2시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네가 그렇게 한다면 집에서 쫓아내겠다!"

그 다음날 그 소녀는 12시 10분 전에 집에 들어옵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있다가 오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그녀는 시무룩해져서 자기 방에 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쫓겨날까 무서워서일 뿐 입니다.

이것이 뿌루퉁한 아이의 순종입니다. 그녀의 마음은 자기의 행동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단지 아버지의 노가 두려워 복종할 따름입니다. 그녀는 기쁨으로 혹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녀는 자기의 자유를 제한하고 생활방식을 제한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습니다.

슬픈 사실은 많은 크리스챤들이 현대 마지막 시대에 단지 지옥에 가기 두려워 하나님께 복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분노를 두려워합니다. 그들의 순종은 단지 "율법적"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릴 진정한 욕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기쁨으로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한복음 8:28-29).

이것이 예수님이 순종의 삶을 지으셨던 주초요 반석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순종이 흘러 나오는 샘이요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바위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순종의 기초적 동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나는 그것을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으니까요. 그분께 큰 기쁨을 안겨드리려구요." 예수님의 열망은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산꼭대기, 조용한 곳에서 종종 밤이 맞도록 기도가운데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유일한 위대한 기도는 "아버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합니까?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자 말입니다.

율법은 자신의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망에서 나오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 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율법적이고 율법적이 아닌지, 무엇이 허락되고 금지되었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단 하나의 기준을 갖고 계십니다. "나의 주님이 무엇을 열망하시는가?"

당신은 그 앞에 모든 율법을 진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규칙들, 법규들 그리고 금지된 것들. 그리고 그는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해가 될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나는 나의 마음이 열망하는 그분을 따르기 위해 이미 세상과 정욕을 버렸습니다.

"나에게 그분께서 원하는 것을 보여주십시요, 그분께서 금지하시는 것 말구요. 나는 그분의 마음의 소원이 나의 행동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그분의 생각을 알고 순종하기 원합니다. 정말로 저는 그분의 법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율법이 없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즉 주님과의 친밀감의 지식이 없는 자들 말이지요. 저는 제 마음에 이미 작용하고 있는 다른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법입니다. '주님 당신을 오늘 기쁘시게 하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이야기하는 법 말입니다."

그런 크리스챤은 매우 곧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종종 그를 비난합니다. "당신은 허락된 일들도 하지 않고 있잖아. 당신은 율법주의에 매여있어. 당신은 너무 달라 보여!"

이 사람은 말문이 막혀 그들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매여있다니 무슨 말씀이지요? 저는 위대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것도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갖고 있으니까요. 나의 행복의 근원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지옥불의 위협이나 혹은 상급으로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흔들기 위해 예언자나 심판의 경고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복종은 자연스러운 그의 사랑의 부산물입니다. 그것은 그에게는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면에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단지 보이기 위해 그렇게 행합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생활방식입니다. 그는 그 집에서 단지 5년간만 살고는 팔아치우고 그 문제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생각합니다. 그 집은 진정한 기초 없는 허울입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이러한 사람은 폭풍이 올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는 사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이 영원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영원에 대해 생각지 않습니다. 한 크리스챤 명사가 한번은 쟈니 카슨(Johnny Carson)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영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저 그런 것은 생각하려 하지 않아요."

슬프게도 많은 크리스챤들이 영원을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심판이 문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그들이 주님 앞에 서서 그들이 말하고 행한 모든 것들을 고해야 한다는 것을 믿고싶어 하지 않습니다.

나는 최근에 무시무시하고 생생한 지옥에 관한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지나갈 수 없는 한 장막의 한쪽 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곳으로도 이동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열망했던 물건이나 사람을 상징하는 사람과 짝지어져 있었습니다. (결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영혼에 커다란 공포와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들은 울며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고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나를 가장 두렵게 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경건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나는 그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제가 당신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할께요!"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고 대답했습니다. "소용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돌아서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우리들 사이에 내려왔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깨어서 떨면서 소리쳤습니다. "오 하나님! 만약 그것이 지옥의 모습이라면 제가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잘 경고해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늘 깨어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언제나 설교단에 설 때 그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되게 해주시고 약하게 가르치거나 농담으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지옥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은 현실입니다." 나는 저주 받은 자들이 "당신은 우리를 도울 수 없어요. 소용없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때 느꼈던 처절한 절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예, 하나님을 향한 의로운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옥과 하나님의 분노를 두려워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서 우리는 사람들을 설득하노니..."(고린도후서 5:11)

예수님은 이 사람을 마태복음 7:21-23에서 묘사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나는 이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말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귀신을 내어쫓고, 병자를 고치고, 많은 기사를 당신을 위해 행했나이다." 그러나 슬픈 사실은 그들은 그들의 집을 모래 위에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마음이 나누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들의 마음은 결코 주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뉘어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첫 자리에 계신 그분께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거나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처음부터 몰랐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사들이 한번도 그리스도와 친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들은 소리칩니다. "주님, 주님!" 평생동안 안식을 찾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상을 받기 위해 그분께로 나아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분을 알기에 충분한 만큼 그분의 임재 앞에 멈춰 서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러한 많은 사역과 교회들을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이름을 그분을 알지도 못하면서 사용합니다.

그들은 그분을 위해 바쁩니다. 그러나 그들은 황홀한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을 가지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분의 마음과 그분을 기쁘게 하는 것을 알려고 신간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은 불법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의 이름을 한번도 그분과 친밀해지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이 모든 일들을 나를 위해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너는 너의 집을 모래 위에 지었다. 왜냐하면 너는 결코 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는 내게 순종한 적이 없다."

만약 당신이 크리스챤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당신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당신의 집이 반석 위에 지어지고, 당신이 주님께 순종하며 걷는다면, 그러나 당신이 날마다 기도 가운데 그분을 무시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그분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의 집은 반석 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래성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려운 때가 닥치면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당신은 교회에 혼자 가는 것으로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주님과 하루 단위로, 시간 단위로 대화를 가져야만 합니다. 당신은 그분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분을 사랑하는데 성장하기 위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알아가기를 열망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뭔가 짐이 되고, 불가능하고, 제한하며 우리의 자유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피할 길들을 찾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러한 방식으로 왜곡합니다. 그분의 은혜를 그분의 율법의 감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일종의 터널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사실 거룩함의 선생입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디도서2:2-3).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는 주님의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준행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손에 채찍을 들고 항상 매질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으로 보지 않습니다. 아니 그는 주님을 자기를 향해 팔을 뻗치시고 "내게 오라 그리고 생명과 힘을 받으라. 네가 모든 것을 이겨나가도록 하겠노라."고 말씀하시는 분으로 봅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유일한 목적으로 주님께 순종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5). 에녹은 주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승천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3:22).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데살로니가전서 2:4).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데살로니가후서 1:11).

성자여, 당신이 주님께 순종하도록 호통칠 설교자를 필요로 한다면 당신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한 꾸러미의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의 목록을 필요로 한다면, 당신이 끊임없이 죄를 깨닫게 해야되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줘야만 한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책이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열정적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그분과 사랑에 빠져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의 소원을 아는 것은 당신의 2차 천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분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분을 섬기고 순종하는 것은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세상이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 마음의 선한 기쁨을 행합니다." 순종의 흐름은 당신의 마음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그것은 당신으로부터 추출해 낼 수도 위협해서 나오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롭게 당신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황홀해 질 때, 그런 순종은 자연히 흘러나오게 됩니다. 당신은 끊임없이 주님 앞에 가서 "오 하나님, 나를 감싸고 있는 사단의 능력을 끊어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아니 그 모든 고리들은 당신이 그분의 마음을 알아갈 때 끊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사랑에 빠져 있습니까? 당신의 대답이 '예'라면 당신을 위해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일주일 내내 그분의 말씀 안에서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은 기도가운데 그분과 사귀기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이지 배우려고 찾는 사랑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것들이 순종의 기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한복음 14:21).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지요. 모든 것이 사랑의 순종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연구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 가십시오. 산상수훈 설교로부터 시작해서 마태복음 5장-7장에 있는 빨간 글씨들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배워갈 때 행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당신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도리에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당신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자라갈수록 가벼워집니다.

그것이 반석 위에 당신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폭풍이 닥쳤을 때, 당신은 두려움 없이 견뎌낼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당신을 움직이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기쁨의 순종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은 그리스도의 종결된 사역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대한 믿음에 의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만이 사랑 안에서 그분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흘린 피로만 가능합니다. 순종은 주님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돌리신 것에 대한 감사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이 진정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