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Devotions   고난을 통해 배우기 by David Wilkerson

고난을 통해 배우기

by David Wilkerson | February 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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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편 71절). 나처럼 당신도 갸우뚱 하며 “이게 도대체 무슨 신학이람. 고난당하는 것이 정말로 유익할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고난이라는 히브리어의 의미를 보면 “천해짐, 징계, 훼손, 상처, 낮아짐, 쇠약해짐, 우울증”으로 쓰였습니다. 이런 의미를 여기에 다 집어넣어 말들 만들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징계 받고 낮아지고 쇠약해지고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고난을 당하고 보니 도리어 내게 유익이 된 이유는 주의 율례를 내가 바로 고난 때문에 배우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율레란 “새겨진 계명”입니다. 따라서 시편기자는 자기가 고난을 당해보니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법과 도리를 자기 가슴에 새겨주시더라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보기 위해 고난이 닥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본래 고난의 주된 목적은 그 고난을 통해 우리가 주 앞에서 인생길을 바르게 걷도록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시 34편 19절). 이 시편의 기록자에 의하면 우리가 무엇을 고난으로부터 배우느냐가 고난이 우리에게 있어야할 이유입니다.

우리교회의 아프리카선교사부부중 하나가 사역하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해왔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이곳에 설상가상으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오래 된 상황입니다. 그들 부부는 최근 이웃나라의 기독교신자들 일행과 함께 준비한 트럭을 타고 함께 그 지역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 생활용품들을 나누어준 뒤 그날 밤 집회에 참석하려고 떠났습니다. 국경을 5마일쯤 남겨놓고 트럭의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트럭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밑바닥까지 깊숙이 밟아보았지만 속도는 계속 죽어만 갔습니다. 일행은 앞서 달리던 차가 멀리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모두 낙담했습니다.

마침내 겨우 국경에 도달하긴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완전 정지하고 된 것입니다. 다들 한마디씩 했습니다. “주님,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런데 갑자기 국경수비대원들이 흥분해서 부산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국경 너머 저편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폭파사건이 터졌다! 조금 전에 여길 지나간 바로 그 차가 적의 잠복조에게 공격을 받아 박살이 났다 한다!” 그 단기 선교팀 일행은 그 차가 자기네들 바로 앞서서 국경 쪽으로 사라져갔던 그때 그 차량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기네들 트럭이 이상 없이 잘 달려주었더라면 그들 역시 함께 변을 당했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그 일행 중 트럭 운전자가 시동을 걸어보려고 자동차 점화키를 꽂아 돌리자 시동이 아무 문제없이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여행길에 트럭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제서 그들은 말썽처럼 보였던 악조건조차 하나님이 역이용하셔서 자기 계획대로 모든 것을 이루셨음을 깨닫게 되었음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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